평균 나이 65세… 한·일 연극판 고수들이 뭉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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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극 '모래의 정거장'은 거장 연출가와 명품 배우가 만난 특별한 신체극이다. 사진은 리허설 장면. 극단 무천 제공

'모래로 뒤덮인 둥근 무대. 각기 다른 남녀가 등장해 모래 위에서 만남과 이별을 반복한다. 모래 속에서 사연이 담긴 물품을 파내기도 하고 서로 보듬기도 하며 그들만의 방식으로 관계를 만들어간다. 그렇게 무대 위에서 만나고 헤어지는 삶을 보며 저 많은 인물 군상 중 한 사람을 나 자신과 동일시하게 된다. 나도 모르게 눈물이 흐른다.'

이달 초 서울에서 선보인 세계 국립극장 페스티벌 개막작인 '모래의 정거장'을 본 이들의 감상평들이다. 한마디 대사도 없이 오직 몸짓만으로 표현되는 신체극 '모래의 정거장'은 굉장히 독특하고 특별한 작품이다. 한국 연극계의 스타 연출가로 불리는 김아라가 연출을 맡았고, 백성희, 권성덕, 박정자, 남명렬, 시나가와 도루, 오기스 렌 등 한국과 일본을 대표하는 연극계의 거장 배우들이 총출동한다. 한국 무대 미술에 독보적인 존재인 박동우 교수가 채우는 공간의 미학 또한 빼놓을 수 없다.

연출가 김아라 연작 중 3번째 작품
신체 무언극 '모래의 정거장'
15,16일 LIG아트홀서 열려
감성이 돋보이는 詩 같은 무대


서울 공연에서 평단과 관객 모두에게 환호를 받은 이 작품을 부산에서 만날 수 있다. 15, 16일 LIG아트홀 부산 무대다. '모래의 정거장'은 일본을 대표하는 작가이자 연출가인 오타 쇼고의 정거장 4부작 중 김아라 연출가가 시도하는 세 번째 무대이다. 2009년 '물의 정거장' '바람의 정거장'을 내놓았던 그녀가 2년 만에 세 번째 작품을 선보이는 셈이다. "전작 '물의 정거장'은 절망하고 일어서고를 반복하는 인생에 관한 명상이라면 '바람의 정거장'은 삶의 흔적에 관한 명상이에요. 이번 '모래의 정거장'에서 중심적으로 쓰는 도구가 몸이에요. 남성과 여성이 부딪치는 열정적인 순간에 대한 기억을 장면마다 색다르게 구성했어요. 감성이 돋보이는 시 같은 무대에요."

김아라 연출가가 전하는 '모래의 정거장'에 관한 소개이다. 극단 '무천'의 대표이기도 한 그녀는 한국 연극계에서 특별한 위치를 차지해 왔다. 1986년 테네시 윌리엄스의 '장미문신'으로 연극계에 입문한 이래 지금까지 40여 편의 작품을 연출했다. 국내 여성 연출가 1호이며, 그녀가 손을 댄 작품은 예외 없이 화제가 됐다. 이번 '모래의 정거장' 역시 궁금해 하는 사람이 많다.

'모래의 정거장'은 연출가의 화려한 경력을 뛰어넘는 대단한 배우들이 포진해 있다. 그중 국립극단의 단장이었고 연극 경력 70년, 한국 연극계의 산 증인인 88세 백성희의 등장이 가장 반갑다. 지난 3월, 국립극장 개관작인 '3월의 눈' 공연을 하던 중 그녀는 쓰러졌다. 뇌졸중 진단을 받은 그녀를 다시 무대에서 보지 못할까 안타까워하는 관객이 많았다. 그녀 역시 다시는 무대로 돌아오지 못할 것 같다는 말을 하기도 했다. 병원생활이 지겨워질 무렵, 김아라 연출가가 찾아와 "선생님! 이렇게 누워만 계실 거냐?"며 열정을 다시 깨웠다.

한국 연극계의 또 다른 거장 박정자는 '물의 정거장' '바람의 정거장'을 보고 난 후 자신이 먼저 '모래의 정거장'을 하고 싶다고 찾아왔다. 일본의 국민 배우로 유명한 시나가와 도루, 오기스 렌은 원작자 오타 쇼고와의 오랜 인연 덕분에 기꺼이 작업에 참여했다. 이렇게 모인 한일 배우들의 평균 나이가 65세란다.

"그분들이 무대에 걸어 나오기만 해도 그분들이 지나온 삶, 시간이 묻어나옵니다. 대사 한마디 없이 몸짓과 미술, 음악, 영상, 오브제, 빛으로 이루어진 무언극에서 이분들의 존재감이 더욱 빛납니다."

이 작품을 위해 LIG 아트홀 부산은 3개 면을 무대로 활용하도록 고쳤고, 25t의 모래가 지름 9.5m의 원형 무대에 뿌려진다. 부산 연극 공연에선 이례적이고 획기적인 작품이다.

▶모래의 정거장=15일 오후 3, 7시. 16일 오후 4시 LIG아트홀 부산. 051-661-8705.

김효정 기자 teresa@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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